사람들은 공부란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보다 좋은 직장과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해서 말이다. 일전에 공부란것이 학습이나 교육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적이 있는데, 오늘은 방향을 달리해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아직도 공부를 단순히 배우고 익히는 따위로 생각한다면 필자의 이전 글을 읽어보기를 조심스레 권해본다.
필자가 특별히 물리를 특별히 잘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 혹은 운동량 보존의 법칙 따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공부와 이것들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마는 오늘은 나도 무언가 보존에 관한 이치를 말해보고자 한다. 이치라고 할것 까지 있겠냐마는 작은 깨달음이라고 하면 나의 소박함에 이의를 제기 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고생을 한다. 나도 지금까지 고생을 해왔고 어느 누구도 고생이란걸 모르고 살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다. 우리가 평생 해야할 고생을 수치로 표현해서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누구나 100만큼의 고생을 한다. 평생을 거쳐서 조금씩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고, 초년기에 하는가하면 말년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100만큼의 고생을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 없다. 다만 그 고생의 종류와 분야가 다를 뿐이고, 그것을 맞는 마음 자세가 다를 뿐일 것이다.
공부얘기를 하다말고 웬 고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공부도 일종의 고생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낸것이다. 얼마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것이 있다면 고생중에 공부가 제일 쉽다는 것이다. 아직 지나온 세월의 길이가 일천하여 많은 고생은 못해봤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공부가 제일 쉽다고 생각되니 앞으로 해야 할 고생과 견주어 본다 하더라도 공부만큼 쉬운 고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듯 싶다.
그렇게 본다면 공부만 해도 어떤 물리적 정신적 제약도 따르지 않는 학생일때 공부를 열심히 해두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창시절 고생을 가장쉬운(?) 공부로 70만큼 써버린다면 그 이후 여생을 걸쳐 30만큼의 고생만 나누어 쓰면 된다. 반대로 학창시절 공부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서 공부를 30만큼 밖에 안했다면 나머지 세월동안 더 힘든 고생 70만큼이 기다리고 있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등 혹은 사회 고위층의 하는 작태가 별로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들의 여유를 비판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학창시절 내가 놀때, 방탕한 생활을 할때, 허송세월을 보낼때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권력이든 명예든 돈이든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비판 할 자격이 나에게 충분치 않다.
아직 학생과 사회인의 어정쩡한 위치에서 이들 사이를 바라보며 어설픈 글을 몇자 적어 보았다.
필자가 특별히 물리를 특별히 잘하거나 좋아하지는 않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 혹은 운동량 보존의 법칙 따위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공부와 이것들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마는 오늘은 나도 무언가 보존에 관한 이치를 말해보고자 한다. 이치라고 할것 까지 있겠냐마는 작은 깨달음이라고 하면 나의 소박함에 이의를 제기 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사람은 태어나서 누구나 고생을 한다. 나도 지금까지 고생을 해왔고 어느 누구도 고생이란걸 모르고 살지는 않으리라 본다. 그것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말이다. 우리가 평생 해야할 고생을 수치로 표현해서 100이라고 가정한다면 누구나 100만큼의 고생을 한다. 평생을 거쳐서 조금씩 고생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한꺼번에 몰아서 하는 사람도 있겠고, 초년기에 하는가하면 말년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누구나 100만큼의 고생을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 없다. 다만 그 고생의 종류와 분야가 다를 뿐이고, 그것을 맞는 마음 자세가 다를 뿐일 것이다.
공부얘기를 하다말고 웬 고생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공부도 일종의 고생이 아닐까 생각하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낸것이다. 얼마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것이 있다면 고생중에 공부가 제일 쉽다는 것이다. 아직 지나온 세월의 길이가 일천하여 많은 고생은 못해봤지만 그것들 중에서도 공부가 제일 쉽다고 생각되니 앞으로 해야 할 고생과 견주어 본다 하더라도 공부만큼 쉬운 고생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을듯 싶다.
그렇게 본다면 공부만 해도 어떤 물리적 정신적 제약도 따르지 않는 학생일때 공부를 열심히 해두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학창시절 고생을 가장쉬운(?) 공부로 70만큼 써버린다면 그 이후 여생을 걸쳐 30만큼의 고생만 나누어 쓰면 된다. 반대로 학창시절 공부하지 않고 허송세월을 보내서 공부를 30만큼 밖에 안했다면 나머지 세월동안 더 힘든 고생 70만큼이 기다리고 있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등 혹은 사회 고위층의 하는 작태가 별로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들의 여유를 비판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들은 학창시절 내가 놀때, 방탕한 생활을 할때, 허송세월을 보낼때 열심히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권력이든 명예든 돈이든 많이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비판 할 자격이 나에게 충분치 않다.
아직 학생과 사회인의 어정쩡한 위치에서 이들 사이를 바라보며 어설픈 글을 몇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