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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극장(劇場) 역시 오래전에 쓴 글입니다. 구름으로 만든 창문 틈으로 수줍은 달빛이 내리쬐는 한 여름의 어느 날 나는 전북 대학교 소운동장을 주시하며 한적하고 그늘진 -나는 밤의 적막과 어둠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장소에 앉아 있다. 종종 생각이 많아지면 들르는 이 밉상한 아스팔트가 깔린 운동장은 나를 위해 만든 거대한 극장이다. 다만 배우는 어설픈 농구족들이고 스포트라이트 대신 봉고차의 헤드라이트를 사용하며 관객이 나 혼자만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이상할 뿐 한편의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임에는 틀림없다. 사실 나 말고도 몇 명의 관객이 더 있긴 하지만 그들은 이 연극에 나만큼의 관심은 없는 듯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욕이나 남의 비판을 함부로 하는 '너저분한 입'이나 그것의 절친한 동료인 '술병' 등을 극장에 들고 오면.. 더보기
나와 글쓰기 언제라도 환골탈태(換骨奪胎)의 기쁨을 맛보려는 눈앞에 꿀을 둔 벌의 기쁨을 잠시나마 이해하는 듯한 위선의 혀를 날름거리며 살아간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나의 동물적 감수성을 최대한 끌어 올려 새벽 이슬을 맞아야 하는 당위성을 강조해 보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없어진지 오래다. 나는 12라운드면 끝나는 권투 시합을 아이도 할 수 있는 인생이라는 경기보다도 쉽게 할 수 있다. 예고 없이 날아드는 라이트 어퍼컷을 한대 맞고 넉다운 된다. 항상 그렇듯이 7이나 8정 도의 카운트가 되기전에 일어나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기에 그리 두렵지는 않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나의 일상성이 무서울 뿐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호숫가에서의 매일 같이 반복되는 삶과 나의 라이프(life) - 나는 좋지 않은 의미에만.. 더보기